3월 18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는 디자인

우리는 요즘 풍요로운 디자인 시대에 살고 있다.

양적인 부분은 물론 질적으로도 다양하고 풍부한 디자인들이 우리주변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은 조금씩 변화하면서도 그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

예전의 디자인은 삶을 개선하는 역할을 해왔다.

보기 흉한 것들을 아름답게 바꾸어주고 불편했던 것들은 사용하기 좋게 개선시켜주는 역할을 해해온 것이다.

이를 테면 공원의 벤치는 기능이나 목적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겉모습은 계속해서 미려해지고 아파트 단지 내 쓰레기 보관대가 조경시설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일 것이다.

도로의 안내 사인이 더욱 명확해지고 명료해지도록 노력하는 이유도 삶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한 디자인의 노력이다.

그러나 요즘의 디자인은 조금 다르다.

물론 삶을 개선하는 기능은 한쪽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디자인을 통해 삶을 패턴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디자인을 통해서 작은 즐거움을 만들기도 하고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도 하고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며 범죄를 예방하고자 하기도 한다. 디자인을 통해서 생각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는 삶의 패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스톡홀롬에는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을 더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역이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보편화되어 있는 요즘 계단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힘이 들지 않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스톡홀롬의 Odenplan역에서는 승객들이 계단을 즐겁게 오르고 내린다. 밟을 때 마다 울리는 피아노 소리 때문이다.

승객들의 계단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아이디어로 피아노 계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피아노 계단이 설치되고 나서 이전보다 계단 이용률이 66%나 증가되었다고 하니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듯 하다.

피아노 계단을 통해 사람들은 작은 즐거움을 느끼며 사람들의 신체활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여 건강한 생활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이 피아노 계단은 이러한 긍정적인 힘을 실어 전세계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피아노 계단>                                                  <이탈리아 밀라노의 피아노 계단>

디자인은 에코라이프를 유도하기도 한다.

바람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재봉틀을 돌리기도 하고 인간동력 에너지를 이용하여 물을 정화하는 아이디어가 이슈가 되기도 한다.

          <Energy seed>                                                <페트병을 활용한 꽃병>

생활 속에서 아주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디자인도 있다.

폐건전지를 분리 수거하여 버리지 않아 쓰레기로 소각되면 우리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분들이 발생한다고 한다.

‘Energy seed’는 폐건전지에 남아있는 소량의 에너지로 조명을 밝힌다는 컨셉으로 자연스럽게 폐건전지의 분리수거를 유도하는 디자인이다.

페트병을 다른 용도를 제안해서 새로운 용도로 생명을 연장해주는 꽃병 커버 역시 아주 간단하게 에코라이프를 유도한다.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마을에서는 몇 해전 부 터 주민들의 요구로 도시 속 새들을 위한 따뜻한 보금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프로젝트 명은 ‘해피 시티 버드 프로젝트’로 새들이 안전하게 살수 있는 행복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아티스트 토마스 윈터(Thomas Winther)가 참여해 새들을 위해 새로운 거주 공간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를 위해 토마스 윈터는 2주간 재활용 자재를 모아 무려 250개의 새장을 도시 속에 만들었다고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해피 시티 버드 프로젝트>

이처럼 디자인은 삶의 여러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그것이 때론 직접적으로 때론 우회하여 유도하지만 결론적으론 디자인을 통한 작은 변화로 생각의 변화를 가져오고 나아가서는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디자인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예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셉테드(CEPTED)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셉테드(CEPTED)란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의 줄임말로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예방을 일컫는 말이다.

즉 건물과 가로등, 감시장비 등을 범죄를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 건축하는 기법을 말하며 범죄 은신처를 제거하기 위해 담을 없애거나 높이를 제한하거나, 주민 동의 아래 범죄가 잦은 골목길에 CCTV를 설치하는 것들을 비롯해, 막다른 골목이라는 뜻으로 도시계획 때부터 범인이 쉽게 도망갈 수 없도록 골목을 설계한 ‘퀼드삭’이나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샛길에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대문을 설치하는 ‘앨리게이터’등이 셉테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1982년 제임스 윌슨(James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Kelling)의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르면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방치해 둘 경우 그 주변 환경까지 망가지며 종국에는 범죄 환경까지 조성된다고 역설하며 환경의 중요성에 관해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과 범죄 발생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많은 근거를 바탕으로 활성화되고 있는 셉테드는 디자인을 통해서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활동 중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움직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셉테드를 이용해서 다양한 사례들을 만들어나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염리동 소금길 프로젝트이다.

염리동은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낙후된 동네였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약한 노인과 여성이 많이 살고 좁은 골목길에는 CCTV하나 없으며 상점도 문을 닫아서 도움을 요청할 곳 조차 없어 범죄율이 점점 높아져만 갔던 어둡고 음침했던 거리였다.

하지만 서울시가 이곳을 대상으로 범죄예방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범죄심리학자와 범죄예방 디자인 전문가, 경찰, 아동청소년 전문가, 행동심리학자 등 총 10명의 범죄예방디자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지금의 염리동 소금길을 탄생시켰다.

범죄자의 심리를 이용하여 밝은 원색인 노란색을 주요색과 그밖에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였으며 지형의 특색을 이용하여 운동코스 또는 지킴이집과 같은 프로그램을 적용하였다.

지금의 이곳은 밝고 활기찬 공간으로 탈바꿈하였으며 작은 관광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가 되었다.

                    <염리동 소금길 프로젝트>

현재 서울시에서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아마존 프로젝트’이다.

아이들이 붐비는 어린이 보호구역인 스쿨존을 재정비하여 아이들이 안전하게 등.하교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고 시범적으로 몇 군데에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아초등학교-아마존 프로젝트>

미아초등학교는 아마존 프로젝트가 적용된 곳으로 구불구불한 형태로 도로 선형을 잡아 30km이하로 고속 주행이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고 담벼락에는 후크 선장을 소재로 한 친근한 조형물과 마을지도, 바닥에는 착시효과를 가진 그래픽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다양한 색상과 친근한 캐릭터가 있는 이곳은 한눈에도 아이들의 공간임을 인지시켜준다.

자연스럽게 운전자들이 주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매일매일 다니는 등하굣길이 지루하지 않은 즐거운 이야기가 있는 거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들은 많다.

법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일반 시민이 무심코 SNS에 올린 30초짜리 동영상을 통해서도 세상은 변하기도 한다.

디자인 역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있는 디자인의 역할이 진화하고 폭넓게 사용되면서 그 힘은 더욱 강해지고 그로 인해 우리의 인식과 행동은 변화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고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낸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론 어설프기도 하겠지만 디자이너들과 함께 이모든 과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같이한다면 염리동 프로젝트와 같이 범죄예방뿐 아니라 그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듯 하다.

우리가 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디자인의 힘을 사용한다면 아직 그 힘이 미치지 못한 곳에서도 곧 밝고 생기 있는 기운이 감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