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

세상을 바꾸는 디자이너, 카림라시드를 만나다

디자인은 인간을 진화시키고 더 아름답고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대중이 많이 소비하는 디자인이 가장 좋은 디자인이다.’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꼽히는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 철학이다. 이러한 그의 철학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카림 라시드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107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를 무대로 약 400여 개의 기업과 작업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카림˅ 라시드의 아시아 최초 대규모 전시라는 점에서 세간의 기대를 모았다. 필자 역시 대학교 때부터 끊임없이 접해야 했던 그가 직접 기획한 전시는 어떨지 매우 궁금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 기대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 민주주의를 외치며 디자인계의 벽을 허물고 있는 그의 철학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전시회 ‘Karim Rashid, Design Your Self’ 전시회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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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카림 라시드는 오늘날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3,000점이 넘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전 세계40여 개국에서 300개 이상의 디자인 상을 받았다.

캐나다 오타와 칼턴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디자인 공부를 했다. 밀라노 로돌포 보네토 스튜디오, 캐나다 KAN 산업 디자인 회사 등에서 디자인 작업을 했고, 패션 회사인 바벨 패션 컬렉션과 노스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그 후 1993년 뉴욕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설립하였고 전 세계 수많은 유명 기업들과 협업을 진행하였다. 삼성의 전자제품, 시티은행과 소니 에릭슨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파리바게트, 겐조 및 휴고 보스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 한화의 CI 디자인, 현대카드 등이 대표적인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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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라시드는 제품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가구, 조명, 패션, 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활발히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는 이러한 그의 영역을 넘나드는 디자인을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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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한 뉴욕의 한 레스토랑_이미지 출처 : google

“Design Your Self!“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Design Your Self – 나를 디자인하라’ 이다. 이는 카림라시드의 철학인 “디자인은 저 멀리 있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일상 속에 밀접하게 닿아있어 삶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디자인은 성별, 나이, 계층을 차별해서는 안되며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디자인 민주주의와 동일한 선상에 있는 주제이다.

“아주 오랫동안 디자인은 소수의 엘리트와 배타적인 문화권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이에 맞서 나는 지난 20년간 디자인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피부로 느끼게 된다. 그의 작품들을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찍고 만지고 의자에서 쉬면서 그의 작품들을 오감으로 느끼며 카림라시드의 디자인 가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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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을 포함한 작품 350여 점 및 대중에게 처음 선보이는 초기 디자인 원본 스케치 그리고 한국 전시만을 위한 단독 작품 전시로 그 특별함을 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카림라시드 디자인의 철학과 광범위한 역사, 디자인의 현재와 앞으로 나아갈 미래 방향 모두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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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구성은 카림의 이야기 Karimstory ’, ‘삶의 미화 Beautification of Life ’, ‘글로벌러브 홀Hall of Globalove ’, ‘스케이프 속으로 Into the Scape ’, ‘디지팝 Digipop’, ‘대량생산의 시대 Era of Mass Production’, ‘인류를 위한 사명 Mission for the Humanity ’7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삶의 미화 Beautification of Life

카림라시드는 현시대의 디자인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위적으로 구축한 환경을 철저하게 미화하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즉 카림라시드에게 디자인이란 삶을 아름다운 것, 좀 더 편안한 것들로 채우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유기적인 곡선형, 컬러풀한 색상, 그리고 사용자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성 등과 같은 특징들은 이러한 디자인에 대한 그의 굳은 신념을 나타낸다.

첫 번째 섹션의 주제인 삶의 미화에서는 이러한 그의 디자인적 신념들을 나타내는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전시 도입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대표작인 쿱의자 (KOOP CHAIR) 이다. 이 의자는 2012년 핀란드 가구 회사 마텔라를 위해 디자인한 의자로 조약돌을 연상시키는 심플한 형태가 인상적이다. 작가는 이 의자를 자궁과 같은 공간으로 구현하여 인간의 근원적인 편안함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한다. 정말 앉아보니 의자가 양옆에서 자연스럽게 감싸주는 구조로 되어 있어 굉장히 편안하고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그 옆에는 작가가 실제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우노 데스크가 있고 그 위에 스케치들이 놓여 있어 작가의 작업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게끔 연출해 놓은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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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시트 Loveseat, 2006]

무한대 기호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이 의자는 2006년 프랑스의 주류브랜드 뵈브 클리코를 위해 디자인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두 이방인이 만나 대화를 나누곤 했던 18세기의 프랑스 의자를 재해석하여 디자인한 것으로 역동적이고 거침없는 곡선과 군더더기 없는 마감으로 모던한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떨어진 꽃잎을 연상시키는 듯한 서정적인 감성도 녹아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의자라기보단 공간에 놓여 있는 오브제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는 아름다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깝게 닿아있어야 한다는 그의 디자인적 신념을 고스란히 녹아든 결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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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치 소파 (Koochy, 2007)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기업 자노타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카림라시드의

대표적인 디자인 특징인 곡선형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소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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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스 소파 (Pierce Sofa, 2010)

카림라시드의 관심사는 가능한 감각적, 인간적, 영감적, 그리고 조각과 같은 형태의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피어스 소파는 상징성을 지닌 소파로써 소파를 구성하는 두 개의 구조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를 필요로 한다. 이 소파는 부유하고 있는 요소들의 평형을 유지함으로서 중력을 거부하고 어느 공간에서든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단순히 형태를 예쁘게 하는 것이 아닌 구조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 낸 것은 카림라시드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도전인 작품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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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는 소금 앤 후추 쉐이커_왼쪽 (Kissing Salt and Pepper Shaker, 1995)

포옹하는 소금 앤 후추 쉐이커_오른쪽 (Hug Salt and Pepper Shaker, 1995)

카림라시드가 디자이너로서 도약할 수 있게 해준 대표작으로 10년이 지난 후에도 베스트 셀러일만큼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제품이다. 작가가 특히 아끼는 이 컬렉션은 현재 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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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와 소파 (Ottawa Sofa, 2017) _ 사용자가 직접 다양한 디자인으로 조합해서 사용할 수 있다.

글로벌 러브 홀 (Hall of Globalove)”

카림 라시드는 분쟁과 전쟁, 국경, 계급의 통념을 넘어서는 세상을 그린다. 이번 전시를 대표하는 설치작품 글로벌러브는 2014년 이탈리아 기업 리바1920과의 협업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카림라시드의 두상을 3m 높이의 웅장한 규모로 선보였다. 글로벌 러브는 전 세계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이고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국경을 초월한 통합을 의미한다. 카림 라시드는 이 작품을 한국 전시 기획 초기단계부터 필수 작품으로 꼽았고, 국내 디자인스튜디오인 아나로기즘과 협업하여 한국 전시만을 위한 새로운 글로벌 러브를 제작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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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러브 (Global Love, 2017)

관객들은 마치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조형물의 내부로 들어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음악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견고한 자작나무로 제작된 내부는 한성재 작가가 제안한 인테리어와 음향, 조명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조형물의 개념이지만 공간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된다.

우리 모두는 하나에서 시작되었고, 머지 않아 다시 하나가 될 것이다

스케이프 속으로 (Into The 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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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이스케이프 (Pleasureescape, 카림 라시드X새턴바스, 2017)

카림 라시드의 영역을 넘나드는 작업은 랜드스케이프 설치물 작업까지 이어진다. 높은 산맥과 산봉우리, 강 등 캐나다의 웅장한 자연 풍광을 바닥으로부터 불규칙적으로 돌출된, 높낮이와 크기가 모두 다른 의자의 집합으로 표현한 이 작품에서도 카림 라시드 특유의 유연한 곡선 형태와 화려한 색을 감상할 수 있다. 관람객들에게 이미 포토존으로 자리 잡은 이 작품은 관객들이 직접 작품에 앉거나 누워 볼 수도 있다. 작가는 각자가 작품의 모양에 맞게 원하는 자세를 취하며 적극적으로 작품을 경험하기를 유도한다.

미래는 이미 우리에게 와있고, 그 미래는 아름답다.”

맞은편에 보이는 작품은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헥틱 스페이스이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표현하기 위해 2008년 이탈리아 라미네이트 제작업체인 라미나트의 최신 기술을 이용하여 밀라노에서 육각형 콘셉트 하우스를 처음으로 선보였고 많은 관람객의 찬사를 받았다. 헥틱 스페이스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부 패턴과 색감이 자연스레 변화하면서 환상적인 디지털 이미지를 형성한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디지털이라는 매개체에 비정형 선의 세계를 카림라시드만의 특유의 감성과 디자인언어로 풀어내 미래세계의 새로운 공간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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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틱 스페이스 (2008)

대량생산의 시대 Era of Mass Production”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디자이너는 본인의 예술성을 추구하기보다는 타인을 위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물론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작업에 녹여낼 순 있지만 근본적으로 고객, 생산자, 소비자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한다.

, 디자인은 갤러리에 전시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필요와 대중의 요구에 의해 탄생한다.

특정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디자인은 대량 생산으로 이루어지고 최대한 가성비가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카림 라시드는 디자인 초창기 때부터 이러한 점에 반발하여 부드럽고, 인체공학적이며, 매끄럽고, 친환경적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제품들을 친환경적인 현대 기술을 사용해 선보여 왔다. ‘대량생산의 시대섹션에는 카림 라시드의 그러한 일생의 걸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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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많은 의자를 디자인했는데 공통적인 특징은 복잡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이 단조롭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선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은 듯한 형태는 디자이너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준다. 조형적으로 균형감이 있으면서도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색다른 디자인은 카림라시드가 그렇게 외치던 디자인은 누구나 사용 가능해야하며 세상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그만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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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트 오 생수병 (2010)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그의 대표적인 제품 디자인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카림라시드가 파리바게트를 위해 디자인한 오 생수병일 것이다. 이 생수병의 전체적인 형태는 인간에게 필수 섭취물 중 하나인 비타민 알약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O) 로고는 삶의 윤회를 상징한다. 불과 엊그제 사먹었던 이 생수가 카림라시드가 디자인한 제품이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 생각보다 그는 우리의 일상 속에 더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를 위한 사명 Mission for the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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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 라운저 (Lava Lounger,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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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의 마지막 구간에는 카림 라시드가 디자이너로서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지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그는 아직도 우리의 실제 환경이 좀 더 아름다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대부분을 디지털 화면을 쳐다보며 살고 있고 그 안에는 다채롭고 유혹적인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실제의 세계를 돌아보면 이 실제의 세계는 이미지의 세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카림 라시드는 이러한 디지털 속 환상과 실제 세계의 괴리감을 좁히고 실제 세계를 더 꿈꿀만한 것, 편안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디자인을 통해 좀 더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편안한 삶을 사는 것, 이 단순해보이지만 어려운 목표를 위해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디자인을 2D 그래픽 작업에 녹여내고 이를 3차원에서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으로, 그는 계속해서 디지털과 현실세계를 더 가깝게 끌어 당기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 마지막에 이러한 작품들을 배치함으로서 앞으로의 그가 어떻게 이 사명을 실현해 나갈지 그의 행보를 유추해볼 수 있도록 의도한다.

나는 종교적인 상직이나 영적인 이미지가 아닌,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부합하는

우리의 새로운 정신을 장식에 담고자 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카림라시드의 작품들을 직접 보고 느끼고 즐기며 다른 세상에 있다고 여겼던 그의 디자인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카림 라시드의 디자인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 우리 삶에 녹아있었고 큰 영향을 끼쳐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가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왔는지, 앞으로 어떤 신념을 디자인을 통해 펼쳐나갈지 예측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7개의 테마를 따라가며 그의 방대한 디자인 작업물들을 보다 보면 디자인 민주주의를 외치며 디자인을 우리 삶에 더 가깝게 하려 했던 그의 노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비단 디자인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인상 깊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디자인으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변화시킬지 앞으로 그가 펼쳐갈 디자인 세계가 기대된다.